클라우스 브링크보이머 Klaus Brinkbaumer ·토마스 슐츠 Thomas Schulz <슈피겔> 기자
21세기의 철학자
뉴미디어 종합 정보 시스템 회사인 애플만큼 초연하면서도 강력한 회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회사의 창시자이자 현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 전제군주적이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중병에 걸려 쇠약해지기도 했던 이 남자는 이제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입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 자체를 규정하고 있다.
그날은 매우 더웠다. 스탠퍼드대의 스타디움에는 한 점의 그늘도 없었고 학생들은 술에 취해 멍청한 미소를 짓거나 킥킥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 앞에 서방세계의 지배자가 고해를 하기 위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한입 깨문 사과의 로고로 알아볼 수 있는 그의 제품들은 현대인의 삶을 더욱 간편하게 할 수 있다고 인류가 믿기 때문에 소유하려는 물건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현대인의 삶이 아예 이 제품의 소유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배자는 그 자신에 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개는 말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내성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뭔가 팔아먹을 것, 그러니까 새 전화기(아이폰)나 납작한 판 모양의 새 기계(아이패드) 혹은 새로운 광고 플랫폼(아이애드)이 있을 때에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뭔가 말을 한다. 아니면 1·4분기에 30억7천만달러를 달성해 전년보다 90% 이상 증가된 새로운 수익 기록을 발표할 때에만 입을 연다는 것이다.
(중략)
VI. 병사들
애플의 문화는 대립적이고 직접적이며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시끄럽고 거칠다. ‘고함 문화’라고 이 회사의 스타인 한 젊은 프로그래머는 말한다.
애플에는 한쪽에는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 다른 쪽에는 관리부라는 2개의 큰 라인이 존재한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고, 직원 3만4천 명이 있는 제국은 4명에서 25명으로 만들어진 팀들로 구성됐으며, 그 팀은 팀장이 지배한다. 그 위에 CEO와 부회장, 전문경영인 부회장이 있고, 이 작은 평행 우주에는 이사회와 자신들의 요구를 표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몇몇 고객과 계약 파트너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잡스가 군림한다.
오래전에 잡스는 ‘오섬’(awesome)이라는 단어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 단어는 ‘경탄할 만한’ 또는 ‘굉장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미국 청소년들은 누구나 ‘오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값싸고 약간은 혐오스러운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애플 제품도 이와 같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 젊은 프로그래머 마이클 모어(가명)는 말한다. “잘나갈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같지만 우리가 두 번 연속 실패작을 내고, 스티브가 세상을 떠나면 금방 그렇게 될 걸요.”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애플에 관해서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침묵 서약을 깨는 사람은 바로 해고됩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려지고 다시는 고용되지 않아요. 그리고 애플의 변호사들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젊은 프로그래머가 묘사하는 회사는 불공평하고 거칠며, 때로는 목적 없이 떠돌다가 다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엄격하지만 동시에 창조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절대로 프로그래머들이나 그들의 상사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애플에서 누구도 엘리베이터에서 잡스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잡스가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일하나? 왜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한가?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그는 “아니, 우리는 그게 필요 없어”라고 말한다.
언제나 몇몇 팀이 스포트라이트 속, 그러니까 잡스의 눈길 아래에서 일을 한다. 이 팀들은 모든 돈과 수단과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 스포트라이트는 캠퍼스를 배회한다. 그 말은 내부적으로 숨가쁘게 정치질이 이루어진다는 소리다. 수많은 대화가 오가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를 원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잡스의 관심을 원한다. 하지만 잡스가 원하는 것은 결과물이고 그 외에 그가 진심으로 관심있어 하는 것은 없다. 애플에서 최고의 관리자이자 진짜 영웅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잡스의 고함을 특히 많이 들으면서 자신의 부하 직원들에게는 침착하게 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소보타는 해고되는 순간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애플에서 일한 사람이다. 그는 불안감이 ‘체계적’이라고 말한다. 소보타의 임무는 쿠퍼티노에서 설계된 제품을 군대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그리고 대학에 파는 것이었다. 오늘날 그는 전망이 좋은 버지니아 로아노크의 언덕 꼭대기에 살고 있다. “회사 전체가 그 모양입니다. 누구도 뭔가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아요. 그 결정에 스티브가 화를 낼 수도 있거든요. 애플에는 죽은 고깃덩어리가 참 많습니다.”
‘죽은 고깃덩어리’, 이것은 미국식 냉소다. 그 사람이 회사에 없어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할 사람, 즉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보타가 장군들, 교수들과 함께 쿠퍼티노에 오면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잡스와 직접 만나게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분위기만 풍겼다. “하지만 그곳으로 날아간 장군들은 누구나 잡스와 만나고 싶어 했다”고 소보타는 말했다. 그리고 가끔 잡스가 나타날 때도 있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로 말입니다.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고 언제나 그 순간 그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만 말했어요. 하지만 그는 언제나 공간을 지배했지요.”
애플은 미팅이 많은 회사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회의가 열리지만 결정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집으로 돌아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직관을 믿는 법을 배웠고, 수년 동안 천재라는 소리만 들어왔다. 그 때문에 그는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나서 어제 시행을 결심했던 프로젝트를 중단해버릴 수 있다. “잡스가 무대 위에 올라가 추종자들에게 이야기할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라고 소보타는 말했다.
이것이 ‘애플 군단’의 영광의 순간이다. 바로 이 순간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병사들은 돈을 잘 벌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버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연봉과 보너스 그리고 주식을 받는다. 병사들은 진짜 중요한 것은 그의 빛 속에 서 있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름을 말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는 “이들이 아이폰을 개발한 팀입니다. 박수를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일어서서 돌아선다. 잡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전부다. 이 5초, 이 시간을 위해 그들은 3개월간 하루에 20시간을 일했다. 만일 직원을 존중하는 분위기에 의사 소통이 잘되고 현대적으로 경영된다면 애플이 더욱 성공적이었을 수 있을까?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뒤 연매출이 약 70억달러에서 430억달러로 증가했다. 주가는 5달러에서 260달러로 상승했다. 2009년 애플은 89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3만4천 직원이 1인당 24만달러의 수익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설립된 지 34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더 이상 컴퓨터 제조회사가 아니다.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 말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 애플이 어떤 회사가 될지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로 보인다. 거대한 전자회사? 디지털 시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창시자?
음악의 소비와 생산과 판매 형태는 모두 10년 전과 다르다. 아이팟에는 1만 개 곡을 입력할 수 있다. 바지 주머니 크기의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완전한 음악 컬렉션이다. 그 때문에 많은 대기업이 추락했고 아이튠스, 그러니까 애플이 권력을 승계했다. 이 온라인 음악 상점보다 음악이 많이 팔리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팟은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출시된 지 3년 뒤, <뉴스위크>에서 묘사했듯이 “삶을 변화시키는 문화적 아이콘”이 된 것이다. 당시 애플은 겨우 300만 대의 아이팟을 팔았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애플은 1억6천만 대를 팔았다.
출판사와 미디어 회사들은 아이패드에도 이와 같은 붐을 기대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책과 잡지를 아이패드에 전자 양식으로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잡스는 물론 이를 ‘마법’과 ‘혁명’이라고 칭한다. 아이패드 역시 대기업, 잡지, 출판사, 신문사 그리고 TV 방송사를 위한 단순한 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패드는 새로운 독자와 새로운 시청자,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수입원을 약속한다. 그들 모두는 디지털 시대에도 과거의 상품으로 돈을 벌 수 있기를 희망한다. 광고주에게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동영상을 첨가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광고를 더욱 생생하고 양방향 소통적으로 만들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타임>은 자사의 첫 번째 아이패드 버전에 광고를 게재하기 위한 비용으로 20만달러를 받았다.
물론 잡스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아이패드를 개발한 이유다. 이번에는 여러 분야의 업계를 한꺼번에 변화시키고 그들을 애플과 연결하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애플은 잡지를 아이패드에서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잡지 형태가 어때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참여할 것이고, 출판사가 제공하는 콘텐츠 가격을 결정할 때도 목소리를 낼 것이다.
애플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장보다는 시장이 아예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잡스의 경쟁자들은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아이패드로 애플의 지배가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다가오는 애플의 시대는 지나간 시대보다 더 번성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애플은 다른 누구보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그들이 계속 다른 분야, 현대인의 삶의 새로운 분야로 뻗어나가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한동안 계속 위로 올라가다 어느 날 갑자기 애플의 세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결국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의 회사가 그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말이다.
잡스가 처음 쓰러진 것은 2004년이었다. 췌장암이었다. 당시 의사들은 최소한 10년은 더 살게 된다면서 수술을 권유했다. 하지만 잡스는 망설였다. ‘첨단 기술의 교황’은 의학 기술을 신뢰하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이자 선불교를 믿는 잡스는 식이요법과 그의 자연요법사가 추천한 구슬을 사용하는 대체의학을 선호했다. 그는 9개월간 수술을 거부했고, 이 기간에 이사회는 주주들에게 잡스의 병과 치료 방법에 대해 알려야 할지 의논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를 추앙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2004년 7월31일 잡스는 수술을 받았다. 다음날 그는 직원들에게 그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병이 들었지만 이제 다 나았다고 쓴 전자우편을 보냈다.
5년 뒤 그는 다시 쓰러졌다. 그에게는 새로운 간이 필요했고, 물론 매우 빠르게 기증받았다. ‘자동차 사고로 숨진 20대 남성’의 장기를 기증받았다고 잡스는 말했다. 2009년 중반 왕은 다시 자신의 제국으로 돌아와 마치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은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망하기 직전의 로마 같았어요.” 그 시기를 겪은 어느 사람이 말했다. 잡스가 사라지자마자 애플에는 제대로 된 구조도 규칙도 없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잡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릴 것인가, 아니면 위로 치켜올릴 것인가?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 뒤 “황제는 병이 들었고 모든 원로는 자신의 사병을 무장시키고 권력을 탐냈다”고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말했다. 복수전이 펼쳐졌다. 잡스가 자신의 재등극 당시 데리고 온 사람들은 잡스가 없어진 순간 사냥감이 되었고 모든 중요한 안건에서 소외됐다. “제품이 발표됐다가 다시 취소되고, 다른 곳에서는 성급하게 개발됐다가 다시 버려졌습니다. 모든 것이 사내 정치였죠.”
잡스가 없는 애플은 불안에 떠는 젊은이들의 모임일 뿐이었다.
보스는 보통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특히 약점에 대해서는 더욱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2005년 6월 뜨거운 여름날 그가 스탠퍼드대 스타디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마치 고해와도 같은 연설을 할 때, 그는 드디어 그의 세 번째 이야기를 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그는 젊었을 때 이런 격언을 읽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네가 매일매일을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어느 날엔가는 그것이 진실이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후 잡스는 오늘이 그의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만일 대답이 ‘아니요’라면 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그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잡스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오후 7시30분에 의사와 만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진단 결과는 췌장암으로 치유가 불가능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에서 6개월이라며 의사는 “주변을 정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검사로 인해 살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생체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호스를 삽입하고 암세포를 떼어내 분석했다. 그리고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수술을 하면 그가 살 수 있다고, 그의 경우는 아주 드문 특별한 예외라고 말했다.
교훈이 있는가? 교훈은 언제나 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 시간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기 위해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일 뿐인 도그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마십시오. 타인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소음에 휩쓸려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죽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과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장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항상 굶주려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도전적으로 사십시오.”
# 이 곳을 클릭하시면 윗 글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 Der Spiegel(distributed by NYT syndicate)
번역 황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