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vate/살며 생각하며

어른의 사랑엔 판타지는 없다.

quantapia 2009. 5. 14. 16:04

1. 배란 숨기는 영장류는 인간이 유일하다. 유성생식 동물에게 가임 기간의 쌍방인지, 절대사안인데. 그거 못 맞추면 멸종하는 건데. 왜 인간만 그리 진화한 걸까. 실버백이 된 고릴라는 이전 보스 새끼들을 다 죽인다. 그래야 암컷이 다시 수태할 수 있으니까. 남의 유전자 위해 제 자원, 낭비 않겠단 게지. 이 습성, 인간도 예외 아니다. 영아살해의 가장 흔한 범인이 바로 계부. 암컷들, 이 위협에 배란 은폐로 대응한다. 배란이 언젠지 모르니, 누구 자식인지 모른다. 수컷들, 제 손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못한다. 암컷 이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배란 시기가 명확할 경우, 수컷은 그 기간만 암컷 독점하면 제 유전자 전달, 달성할 수 있다. 그때만 전담마크하고 새 암컷 물색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배란 은폐로 그게 불가능해진다. 언제 다른 수컷 새끼를 밸지 모르니까. 불안하다. 암컷 곁을 떠날 수가 없다. 바로 그 수컷 불안을 볼모로 일부일처, 탄생한다. 그뿐 아니다. 그렇다고 365일 감시도 가능치 않다. 수컷으로선 사냥이나 전쟁으로 부재시 암컷을 묶어둘 사회적 강제가 필요하게 된다. 결혼제도, 이 대목서 부상한다. 암컷 입장에선 오랜 임신과 자식 양육 위한 지속적 자원 공급이란 과제, 그리 해결되는 게다.

2. 그 체제에서 암컷만 득본 건 아니다. 암컷 독점하는 우두머리를 바라보는 수컷 원숭이들의 절망과 궁상 본 적 있는가. 수컷들, 그게 두려워, 제 욕망의 최소한은 보장받는 교배 제도에, 자신들 무한 방사본능 거스르면서까지 합의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수컷에게 일부일처는, 강자에게 핸디캡이요, 약자에겐 ‘어퍼머티프 액션’(소수자 보호정책)인 게라. 그 시스템의 안정 위해 윤리와 규범은, 죄의식을 개발했고. 그러나 그렇게 타고난 본능을 사회적으로 제지당한 수컷들, 일부일처로 해갈되지 않는 잉여 욕망에 끊임없이 안절부절 못한다. 바로 여기서 유곽이 등장한다. 그곳엔 탐색 시간도, 거절 공포도, 감정 비용도 없다. 실용적일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전하기까지 한 게다. 당신 남친은 그래서, 거길 갔다. 안절부절 못하다가. 당신 배신감, 물론 당연하다. 그러나 수컷 본능이 그리 설계되었다는 걸, 옳다 그르다 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최선의 유전자 택하려는 암컷들이 본능적으로 부자에게 끌리는 걸, 부자 아닌 절대다수 수컷들이 아무리 비난해봐야 원천봉쇄 할 수 없듯.

3. 오해는 마시라. 수컷은 원래 그러니 봐주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관계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을 사랑했던 그 남자는, 당신만을 숭고하게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숙명의 파트너가 아니라, 그냥 여느 수컷처럼 태어나 우연히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게 여의치 않자, 새 상대 찾아 떠났을 뿐이고. 그게, 있는 그대로다. 많은 이들이 그 가차 없는 팩트와 마주하는 대신, 자신만의 판타지를 구축해 자신을 보호한다. 자신의 사랑만은 특별했던 거라 믿는 당신처럼. 그러나 당신 사랑 역시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 수없이 반복되어 왔던 흔하디흔한 감정일 뿐이다. 당신 둘의 목표였던 결혼 역시, 암수의 욕망과 이해가 갈등하고 긴장하다 도달한 하나의 제도일 뿐이고. 믿기 싫을 만큼 야박하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다.

4. 기실 사랑과 관련한 갈등의 대부분은, 상대가 아니라 그렇게 자신만의 판타지에서 비롯된다. 존재할 수 없는 상대를 그려놓고, 그에 걸맞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왜 거기 미치지 못하냐며 절규한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판타지일 수는 없는 거다. 수컷 욕망만 말하는 게 아니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우리 모두는 동물적 욕구와 야비한 이기와 비루한 결함 속에 산다. 그게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보잘것없는 인간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인간만이 가능한 사랑이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상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어른의 사랑은, 그제야 시작되는 게다. 아이와 어른은, 거기서, 갈린다. 어른의 사랑엔 판타지가 없다.

PS - 안마방 용서하란 게 아니다. 그는 안마방에 가서가 아니라, 여자를 제 매력이 아니라 돈으로 사는, 그 자존심이 초라해, 못난 거다. 이건 그와 무관한, 당신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 둘의 기회는, 그만하면, 이미 소진됐다. 그가 그랬듯, 새 사랑 찾으시라. 너무 당연하게도, 다시, 사랑할 수 있다. 불안해, 마시라.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