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영어 토익 점수는 700점대밖에 안 되는데도 은행을 비롯해 대기업 여러 곳에 동시 합격을 한 선배가 있습니다."
본지의 '대학생취업자문단'으로 활동하는 전북대 이동현(경영학과 4)씨의 제보를 받고 수소문을 했다. 소문의 주인공은 지난 2월부터 인천 고잔동의 기업은행 남동중앙지점에서 막 수습행원(5급) 생활을 시작한 김재영(27)씨였다.
김씨는 지방대(전북대 무역학과 03학번) 출신으로 입사지원서에 토익 점수 제출도 안 했지만 취업 한파가 무색하게도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기업은행을 포함, 삼성증권·LG파워콤 등 5개 대기업에 동시 합격했다. 합격한 5곳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인간적인 분위기'에 끌려 기업은행을 택했다고 했다.
그의 가정형편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다음 달 환경미화원으로 정년 퇴임을 앞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둘이 있는 집안의 막내다. 겉으로 드러난 조건대로라면 취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 김재영씨가 어떻게 대기업과 은행 등 5곳에 동시 합격했을까. 그의 상식 파괴 취업 성공기를 추적해보았다.
◆대학생 1만명을 끌어들인 추진력
대학 3학년이던 2007년 5월 그는 하이트맥주가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대학생 마케터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전국에서 뽑힌 100명의 동기 대학생 마케터들과 함께 6개월 동안 회사 이미지 홍보와 대학생의 맥주 공장 견학을 유치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었다. 대부분 학생이 회사에서 준 포스터를 교내 게시판에 붙이고, 조금 더 적극적이라면 교내 과 학생회를 찾아다니며 공장 견학을 권유하는 정도였다.
김씨는 달랐다. 인터넷을 뒤져 전국 웬만한 대학의 과 학생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생회장들의 이메일을 알아낸 뒤 이메일이나 전화로 죄다 연락을 했다. 어차피 MT 갈 거면 공장 견학을 프로그램에 넣어라. 맥주도 공짜이고, 시간도 많이 안 걸린다…. 그냥 견학하라고 권유하는 게 아니라 고객 입장에서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안내문도 직접 만들어 돌렸다.
그가 1등이 된 것은 당연했다. 그해 11월까지 전북대·전주대 등 인근 대학은 물론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성균관대 등 전국 25개 대학에서 148개팀, 9700여명을 전주와 강원 홍천의 맥주 공장으로 견학을 유치했다. 당시 대학생 마케터 100명 중 2위였던 학생이 4000여명을 유치한 것에 비하면 독보적인 실적이었다. 김씨는 "어차피 할 거라면 가장 열정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가정형편상 엄두도 낼 수 없던 유럽 여행이 부상으로 걸려 있어 더욱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경력들
그의 이력서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다양한 경험을 쌓을 때마다 수상 실적도 함께 쌓아 갔다는 점이다. 어떤 경험을 하든 단순히 경험하는 데 머물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그는 각종 수상 실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 탓에 해외 경험 기회가 없었던 그의 첫 해외여행은 대학 3학년 초 마닐라 외곽 빈민촌으로 떠난 자원봉사활동이었다. 태평양아시아협회(PAS)에서 운영하는 해외청년 봉사단 프로그램에 자원해 뽑힌 것이다. 하지만 김씨 이력서에는 이 활동과 함께 '산 세바스찬 칼리지' 학장의 감사패 수상이 적혀 있다. 당시 21명의 대학생 자원봉사단이 머물던 숙소가 바로 이 대학이었고, 김씨는 단장으로서 맹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입학 후 곧바로 군대에 갔다. 군에 다녀와 장기적인 계획으로 공부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선배들의 충고 때문이었다. 그렇게 군대에 간 그는 대대장 표창 등 두번의 수상 경력을 이력서에 추가했다. 행정병으로 일하면서 감사(監査)받을 때 탁월한 성실성을 보인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교 시절 학생회장을 할 때는 전북 교육감상을 받았다. 바자를 열어 350만원의 수익금을 올린 뒤 소년소녀 가장인 교내 친구 11명에게 장학금을 준 공로다. 신한은행 대학생 홍보대사 경력에도 100명 중 4명만 받았던 활동 우수자 표창이 있다.
◆"영어 공부를 안 한 게 아니라 토익 공부를 안 한 것"
그가 합격했던 5곳의 기업 중 하나인 A사. 최종 면접 중 면접관이 "열정 하나는 믿어달라"는 그의 주장에 "토익 점수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안 좋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대학생 때도 남들 토익 공부할 때 해외 자원봉사 가서 글로벌 마인드를 키웠고, 남들 자격증에 매달릴 때 해외 나가서 맥주 팔고 홍보하면서 차별화된 스펙을 쌓았다. 이것이 마케팅 활동하는 데 중요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결국 합격했다.
그는 4학년 1학기 때 교내 프로그램으로 6개월간 필리핀에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토익 시험을 쳤다. 점수는 700점 초반대. 이때 그는 토익 공부를 더 할까 고민했었다. 금융권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토익은 최소 800점은 넘어야 한다는 주변의 성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어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 난 내가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키우자'고 마음을 잡았다. 이때 작은 용기가 그의 취업에 큰 도움이 된 셈이다.
"토익 점수가 있는데도 왜 성적을 입사지원서에 안 냈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는 "꼭 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웃으며), 솔직히 점수가 자신 없었다. 그런데 저는 영어 공부를 안 한 게 아니라 토익 공부를 안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학교 친구들과 영어 회화 스터디그룹을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후배들로부터 취업 비결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축구팀은 11명인데, 각자 모두 자기의 포지션이 있지요.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가 많더라도 감독이 한꺼번에 3명의 골키퍼를 넣지 않습니다. 남들 따라 한다고 토익 점수 같은 스펙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기만의 경쟁력을 찾아 최선을 다하면 좋은 포지션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뭘 하든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하는 김재영씨의 자기소개서
2001년 전북 교육감상 수상 →고교 학생회장 시절 바자 열어 수익금으로 소년소녀 가장 11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공로
2005년 모범 병사 표창 수여 2회→ 행정병으로 군 복무 당시 뛰어난 업무 처리로
2006년 신한은행 대학생 홍보대사 활동우수자 표창→100명 중 가장 뛰어난 홍보대사 활동한 4명으로 뽑혀
2007년 필리핀 산 세바스찬 칼리지(San Sebastian College) 학장 감사패 수여→해외봉사단 활동 당시 단장 맡아 리더십 발휘
2007년 하이트맥주의 대학생 마케터 프로그램 전국 1위→100명의 동기 마케터 중 탁월한 실적을 올려
<봉사활동>
2006 전주국제영화제(상영관 자원봉사)
2006 전주세계소리축제(국내 공연 귀빈 수행)
2006 화엄사 영성음악축제 자원봉사
2007 PAS(태평양아시아협회) 청년 해외봉사단 10기
2007 전북대학교 외국인 자원봉사
<대외활동>
신한은행 대학생 홍보대사 4기
기업은행 대학생 홍보대사 2기
하이트맥주 대학생 마케터 2기
국정홍보처 대학생 홍보요원 '다이나믹 코리아' 2기
교내 레크리에이션 동아리 '만원버스' 13기
이리고등학교 45회 학생회장